남원 춘향묘 앞 육모정
                                                                               남원 춘향묘 앞 육모정
                  右오헌선생 생전의모습..오주환 교수,전대종회장 오재면.오태규박사, 다산 정약용선생 묘를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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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더코리아플러스이코노미】오공임 기자 = 오헌 선고 기일. 음력 2월 초하룻날 오헌 아버지 타게하신지 어언 12년이 됐다.

86세를 고정명이라 말씀 하시더니. . . . .

서울에 거주하시다 건강상 문제가 생겨 남원 동생 댁으로 내려 가시던 날 정안휴게소에서 "내가 다시 서울을 올 수 있을까 "?

반문하시 듯 그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한데 벌써 1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쳐 갔다.

서울에서 동생과 함께 기차를 타고 남원에 도착 바로 산소로 이동 육모정을 지나 정령치 고개를 넘어 가기로 했다.

뜻밖에 춘향묘 앞에서 오석근 조카를 만나게되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제사 모시러왔다며 인사를 나눈뒤 방현리 선영 산소에 들려보니 남원 동생이 자주 들려 성묘하고 벌초를해 말끔한 산소를 대하면서 남원 아우 내외가 얼마나 고마운지 가슴이 뭉클하다.

남원에서 여러가지 봉사활동을 하면서 오헌 부친의 뒤를 이어 유림 숭모회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공을 쌓아가는 올케가 대견하고 지극정성으로 제물을 준비하면서 친정 언니 동생과 함께 사돈의 기일을 준비해주는 그 고마움을 어찌다 말로할 수가 있을지 남다른 우애는 부럽기도 하다. 

맡 며느리는 아니지만 그 일을 도맡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더욱 고마운 마음을 적어본다.

성묘와 기제사 앞으로 얼마나 계승되어 질지는 모르겠지만  정성으로  제사를 모셔야 한다면서 한 번도 귀찮아 본적은 없다는 그 마음이 감사할 뿐이다.

남원을 돌아보면 선고 오헌의 발자취가 참으로 많은 것을 아주 뒤늦게야 알게되었지만 자신이 하시는 일을 조금도 내어 비치기를 싫어하셨기에 그냥 지나쳐 왔지만 아버지의 발자취를 찾아보면 수 많은 기록들이 고스란히남아  호헌 오화수 발자취를 따라 기행을 시도해 봐야겠다.

만인의총, 단군성전, 김희부사 묘비, 노암동 입석, 필적외 수 많은 업적들이 더욱더 커보인다.

생전 오직 종사와 후학을 기르시는 일에 한평생을 살다 가셨다해도 과언은 아니지싶다.

슬하 7남매 특별하진 않아도 무난히 가정을 이루고 살아 가고 있으니 모두가 조상님 부모님 음덕이라 그리 믿는다.

일년에 한번  기일이나 되어야 만나게 되는 가족  앞으로 살아가면서 몇번이나 더 볼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면서 부모님 뜻에따라 열심히 선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덕목으로 그리 생각하면서 잘 살아야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오석근 조카님 점심 만찬을 대접받아 미안하고 고맙다는 그 말을 적어본다.

봄이 시작되는 길목 산수유 매화 피어나는 새봄은 또 이렇게 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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